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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안시성의 가을
제36화

안시성의 가을

고구려와 당의 전쟁 · 6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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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631년, 당나라가 고구려의 ‘경관’을 허물자 고구려는 서쪽 변경에 천 리에 이르는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642년, 장성 공사를 감독하던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대신들을 죽이고, 왕의 조카 보장왕을 세운 뒤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칠 때를 기다렸다.

등장인물

안시성주안시성을 지키는 장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마루안시성의 소년
상상 인물
당 태종당나라 황제.
몸소 대군을 이끈다
이세적당나라 장수.
요동도 행군대총관
이도종당 태종의 일가, 강하왕.
흙산을 쌓는다
고연수고구려 북부의 욕살.
15만 구원군을 이끈다

644년, 당 태종의 사신 상리현장이 고구려에 왔다. 그때 연개소문은 이미 신라를 쳐서 두 성을 깨뜨린 뒤였다.

상리현장당나라 사신연개소문막리지 · 고구려의 실권자보장왕고구려의 왕
상리현장신라를 또 치면,
이듬해 당이 군사를 낼 것이오.
연개소문수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신라가 우리 땅 오백 리를 빼앗았소.
그 땅을 돌려받기 전엔,
싸움은 그치지 않소!

막리지는 끝내 당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644년 11월, 낙양. 몸소 고구려를 치기로 한 태종은, 수 양제를 따라 고구려에 갔던 늙은 신하 정천숙을 불렀다.

당 태종당나라 황제
정천숙요동은 길이 멀어 군량을 대기 어렵고,
동이는 성을 잘 지켜 쉽게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당 태종오늘은 수나라 때와 다르오.
공은 지켜보기만 하시오.

신하들이 모두 말렸지만, 태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645년 3월, 정주를 떠나며 그는 몸소 활과 화살을 차고 비옷을 말안장 뒤에 손수 묶어 맸다.

중국을 위해서는 자제들의 원수를 갚고,
고구려를 위해서는 임금의 치욕을 씻어 주리라.

朕今東征 欲爲中國報子弟之讎 高句麗雪君父之恥耳 — 『삼국사기』 보장왕 4년

4월, 이세적이 이끄는 당의 선봉이 요하를 건넜다.

이세적당나라 장수
이세적건넜다!
이제 요동의 성들이다!

고구려의 성들은 크게 놀라, 저마다 문을 닫고 지켰다.

5월, 요동성. 당군의 포차는 큰 돌을 300보 넘게 날려, 맞는 곳마다 부서뜨렸다.

남풍이 거세던 날, 당군이 서남쪽 누각에 불을 놓자 불길이 성 안으로 번졌다. 요동성은 끝내 떨어졌다.

4월 개모성, 5월 비사성과 요동성, 6월 백암성. 요하 동쪽의 성들이 잇달아 당군에게 떨어졌다.

요하압록강고구려당군발해서해평양성신성개모성요동성백암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오골성당 수군성의 자리는 추정

백암성의 성주는 몰래 항복하고, 성 위에 당나라 깃발을 세웠다.

당군은 다시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 길목에서,
한 산성이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요동성 남쪽의 산성, 안시성. 무너진 성들에서 피란민이 밀려들었다.

마루안시성의 소년 · 상상 인물
피란 온 할머니요동성에서 왔단다.
성이… 다 타 버렸어.
마루…여기까지
올까요?

안시성을 지키는 성주. 그의 이름은 기록에 남지 않았다.

안시성주이름이 전하지 않는 장수
마루성주님, 우리 성도…
떨어질까요?
성주이 성 안에
네 집이 있지?
그럼 너도,
이 성을 지키는 사람이다.

태종은 안시성주에 대해 이렇게 들었다고 했다.

연개소문…저 성은
그에게 맡겨 두어라.

막리지 연개소문의 정변 때, 성주는 따르지 않고 성을 지켰다. 연개소문은 성을 쳤지만 떨어뜨리지 못했다고.

6월, 당군이 안시성에 이르러 공격을 시작하자, 고구려의 구원군 15만이 몰려왔다.

마루우리 군사다!
우리 군사가 왔어요!

북부 욕살 고연수와 남부 욕살 고혜진이 이끄는 고구려군과 말갈군이었다. 욕살은 지방의 큰 성을 다스리는 장관이다.

나이가 많아 일에 밝은 대신 고정의가 고연수에게 말했다.

고연수북부 욕살고혜진남부 욕살
고정의당 태종은 세상에 드문 인재요.
싸우지 말고 버티며 군량길을 끊으시오.

고연수는 듣지 않고, 안시성 40리 앞까지 곧장 나아갔다.

당의 돌궐 기병이 싸우다 달아나는 척하자, 고연수는 ‘쉬운 상대’라며 뒤쫓아 와 안시성 동남쪽 8리의 산 아래에 진을 쳤다.

당 태종깃발을 눕혀라.
북과 나팔이 울리면,
일제히 쳐라.

그 밤, 별똥별 하나가 고연수의 진영에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북과 나팔이 울리자 숨어 있던 당군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가운데, 눈에 띄는 흰옷을 입은 당나라 군사 설인귀가 크게 외치며 뛰어들었다. 고구려군은 크게 무너졌다.

돌아갈 다리마저 끊기자, 고연수와 고혜진은 3만 6,800명을 이끌고 항복했다.

마루우리 군사가…
항복했어요.
성주…이제는,
우리가 지킨다.

태종은 자신이 머문 그 산의 이름을 ‘주필산’으로 고쳤다. 황제가 머문 산이라는 뜻이다.

당군이 성을 에워쌌다. 안시성 사람들은 황제의 깃발과 일산이 보일 때마다 성 위에 올라 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마루물러가라!

태종은 몹시 노했다. 이세적이 나서서 아뢰었다.

이세적성을 빼앗는 날,
사내는 모두
죽이게 해 주소서!

이 말이 성 안에 전해지자, 안시성 사람들은 더욱 굳게 성을 지켰다.

포위는 길어졌다. 항복한 고연수와 고혜진이 태종에게 아뢰었다.

안시성 사람들은 제 집을 아껴,
사람마다 스스로 싸웁니다.

安市人顧惜其家 人自為戰 — 『삼국사기』 보장왕 4년

포위가 길어지며 성 안의 밥 짓는 연기는 날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성 안에서 닭과 돼지 소리가 요란했다.

당 태종군사를 먹이는 게다.
오늘 밤 쳐 나올 터,
대비하라!

그 밤, 고구려 군사 수백 명이 밧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갔다.

마루 아버지상상 인물

기다리던 당군이 횃불을 들고 몰려들었다. 태종이 몸소 성 아래로 와서 군사를 다그쳤다.

날이 밝았다. 고구려 군사 수십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마루아버지!
아버지…돌아왔다.

빈 밧줄들이 새벽바람에 흔들렸다.

그 뒤, 당 태종의 일가인 강하왕 이도종이 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흙산을 쌓기 시작했다.

이도종강하왕 · 당 태종의 일가
이도종밤에도 쉬지 마라!
성보다 높이 쌓아라!

예순 날 동안 밤낮없이 쌓았다. 들어간 품이 50만이었다.

성 안에서도 성벽을 더 높이 쌓아 맞섰다. 싸움은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벌어졌다.

성주무너진 곳은
곧바로 막아라!
마루돌 가져왔어요!

돌에 누각과 성가퀴가 부서지면, 그 자리에 곧바로 나무 울타리를 세워 막았다.

흙산 꼭대기는 성벽에서 몇 길 떨어지지 않았고, 성 안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부복애당나라 장수 · 꼭대기를 지킨다
마루저 위에서는… 우리 집이
다 보이겠어요.
성주…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흙산이 무너져 내리며 성벽을 덮쳤다.

성벽 한쪽이 무너졌다.

마침 흙산 꼭대기를 지키던 부복애는 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성주지금이다!
흙산을 빼앗아라!

고구려 군사 수백 명이 무너진 틈으로 뛰쳐나가 흙산을 빼앗고, 둘레에 도랑을 파서 지켰다.

태종은 자리를 비운 부복애를 처형하고, 사흘 동안 흙산을 되찾으려 했지만 끝내 빼앗지 못했다.

그사이,
가을이 깊어 갔다.

요동은 일찍 추워졌다.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군사와 말이 오래 머물기 어려웠고, 군량도 바닥나고 있었다.

당 태종…군사를
돌린다.

떠나기에 앞서, 당군은 안시성 아래에 군사를 늘어세우고 위세를 떨쳤다.

성 안에서는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그때, 성주가 성 위에 올라섰다.

마루성주님…

성주는 떠나는 황제를 향해 절하며 작별을 고했다.

당 태종참으로
굳게 지켰구나.
비단 백 필을 내리노라.
네 임금을 잘 섬기라.

태종은 성을 굳게 지킨 것을 칭찬하며, 비단 100필을 내렸다.

정천숙동이는 성을 잘 지켜,
쉽게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당군이 물러갔다. 석 달 가까이 이어진 싸움이 끝났다.

돌아가는 길, 요택의 진창에 수레와 말이 빠졌다. 태종도 말안장에 섶을 싣고 길 메우는 일을 거들었다.

발착수를 건널 때는 눈보라가 몰아쳐, 젖은 군사들이 많이 얼어 죽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태종은 깊이 뉘우쳤다.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하던 신하 위징은 두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 길에 나서게 하지 않았을 것을.

魏徵若在 不使我有是行也 — 『삼국사기』 보장왕 4년

마루성주님은
이름이 뭐예요?
성주…안시성 사람이지.
너처럼.
성주그럼 너도, 이 성을 지키는 사람이다.

성은, 그 안의 사람들이 지켰다.

500년 뒤,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은 이렇게 적었다.

그 성주는 비상한 호걸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역사가 그 이름을 잃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其城主 可謂豪傑非常者矣 而史失其姓名 … 甚可惜也 — 『삼국사기』 보장왕 4년, 김부식의 논평

제36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안시성은 어디였을까

    『삼국사기』는 태종이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가 날래다’고 한 말을 전할 뿐, 성이 어디 있었는지는 적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는 중국 랴오닝성 하이청(해성) 동남쪽의 영성자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해요. 조선 후기에는 봉황성이라는 말이 연행사들 사이에 퍼졌지만, 남구만·박지원·안정복 등은 이를 틀렸다고 보았어요. 안시성은 고구려가 망한 뒤 부흥 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가 671년 당군에 깨졌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삼국사기』 옛 판본『삼국사기』 옛 판본 (국보)

    성주의 이름

    김부식은 태종의 동쪽 정벌이 안시성에서 꺾였으니 그 성주는 비상한 호걸이라 할 만한데, 역사가 그 이름을 잃어 매우 애석하다고 적었어요. 중국 역사책에도 이름은 없어요. 흔히 알려진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명나라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지금 남은 가장 이른 판본은 1553년)에 처음 보이고,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무렵 윤근수의 『월정만필』에 처음 나온 뒤 조선 후기의 글에 퍼졌어요. 그래서 소설에서 지어낸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김부식의 논평)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흙산 싸움

    『삼국사기』는 강하왕 이도종이 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흙산을 쌓았는데 60일 동안 밤낮으로 50만 품이 들었고, 꼭대기가 성에서 몇 길 떨어지지 않아 성 안이 내려다보였다고 적었어요. 흙산이 무너지며 성벽을 덮쳐 성이 무너졌지만, 마침 꼭대기를 지키던 부복애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구려군 수백 명이 나가 흙산을 차지하고 도랑을 파서 지켰어요. 흙산이 무너진 까닭은 기록에 없어서, 고구려군이 땅굴을 파서 무너뜨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안악 3호분 벽화의 철갑 기병안악 3호분 벽화의 철갑 기병 · 고구려의 갑옷 입은 기병(4세기)

    주필산 싸움

    안시성을 구하러 온 북부 욕살 고연수와 남부 욕살 고혜진의 15만에게, 늙은 대신 고정의(벼슬은 대로)는 ‘싸우지 말고 버티며 군량길을 끊으라’고 했지만 고연수는 듣지 않았어요. 돌궐 기병의 거짓 패주에 끌려 나온 구원군은 산과 골짜기에 숨은 당군에게 크게 졌고, 3만 6,800명이 항복했어요.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은 설인귀가 ‘기이한 옷’을 입었다고 했고, 『구당서』·『신당서』의 설인귀 전기는 눈에 띄려고 흰옷을 입었다고 했어요. 태종은 욕살 아래 벼슬아치 3,500명을 당나라 안쪽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평양으로 돌려보냈어요. 고연수는 항복한 뒤 늘 분해하다 근심 끝에 죽었고, 고혜진은 장안으로 갔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5. 당 태종의 초상당 태종의 초상 · 후대에 그린 그림

    화살 맞은 황제?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은 시 「정관음」에서,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치다가 화살에 눈을 맞았다는 뜻으로 읊었어요. 하지만 『삼국사기』에도 중국 역사책에도 그런 기록은 없어서 전설로 봐요. 기록에 따르면 태종은 돌아가는 길에 요택의 진창과 눈보라로 큰 고생을 했고, 4년 뒤인 649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색 「정관음」(『목은집』)
  6. 랴오양 백탑중국 랴오양의 백탑 · 고구려 요동성이 있던 곳 (탑은 12세기에 세운 것)

    전쟁의 결과

    당군은 이 싸움에서 개모성·요동성·백암성·비사성 등 열 성을 빼앗고, 요동성·개모성·백암성의 사람 7만 명을 중국으로 옮겼어요. 그러나 신성·건안·주필산의 세 큰 싸움에서 양쪽 모두 많은 사람과 말을 잃었고, 태종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깊이 뉘우쳤어요. 이해 5월 신라는 군사 3만을 내어 당을 도왔는데, 그 틈에 백제가 신라 서쪽의 일곱 성을 빼앗았어요. 당은 그 뒤에도 647년과 648년에 군사를 보내 고구려를 거듭 쳤어요. 『삼국사기』에 달이 나오지 않는 백암성 항복·안시성 도착·주필산 싸움(6월)과 철군(9월)은 『자치통감』을 따랐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7년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14년 · 『자치통감』 권197~19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시성 전투」
  7. 상상으로 그린 장면

    마루와 그 아버지·어머니, 피란 온 할머니는 기록에 없는, 상상으로 그린 사람들이에요. 성주가 한 말(마루에게 한 말과 싸움터에서 외친 말)과 마루의 물음, 성 안 사람들과 피란민들의 모습, 흙산을 빼앗을 때 성주가 앞장선 모습, 요하를 건넌 이세적과 흙산을 쌓던 이도종이 외친 말은 지어냈어요. 태종이 들었다는 연개소문과 안시성주 이야기는 그림자극으로 그렸고, 연개소문의 말은 그 기록을 말로 옮긴 거예요. 상리현장·연개소문·정천숙·고정의의 말, 이세적이 성의 사내들을 모두 죽이자고 청한 말, 태종이 깃발을 눕히게 하고 기습을 알아챈 말, 군사를 돌리고 비단을 내린 말은 『삼국사기』를 풀어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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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 대야성의 눈물

시간을 세 해 거슬러 642년, 신라. 백제군에 대야성이 떨어지고 딸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김춘추는 기둥에 기댄 채 하루 종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적국 고구려로 향한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