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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천리장성
제35화

천리장성

연개소문 · 6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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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598년과 612년, 수나라는 거듭 대군을 보내 고구려를 쳤다. 612년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으로 적진을 살피고,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 지치게 한 뒤,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그 뒤로도 두 번 더 쳐들어왔다 물러난 수나라는, 618년 무너졌다.

등장인물

연개소문고구려 동부의 대인.
칼 다섯 자루를 찬다
영류왕고구려의 왕 건무.
당과 화친하려 한다
보장왕영류왕의 조카.
642년 왕이 된다
여울장성 쌓는 집의 아들
상상 인물
여울 아버지장성을 쌓으러 간 농부
상상 인물
진대덕641년 고구려에 온
당나라 사신

618년, 영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이복동생 건무가 왕위에 올랐다. 영류왕이다.

영류왕영양왕의 이복동생 · 이름은 건무
영류왕싸움은
끝났다.
이제 백성을
쉬게 하리라.

같은 해,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나라가 섰다.

622년, 당나라 고조가 글을 보내, 수나라 때의 싸움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서로 돌려보내자고 했다.

당나라 사신이곳의 고구려 사람들은 돌려보낼 테니,
그곳의 우리 사람들도 놓아 보내시오.
영류왕나라 안의 중국 사람들을
모두 찾아 돌려보내라.

고구려는 나라 안의 중국 사람들을 모두 찾아 돌려보냈다. 그 수가 만 명이 넘었다.

늙은 사내고맙소…
이제 고향에 가오.

당 고조는 크게 기뻐했다.

624년, 당나라 도사가 천존상을 모시고 와서 『노자』를 강의했다. 왕과 나라 사람들이 들었다.

당나라 도사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니…
영류왕싸우지 않고도 나라를
지키는 길이 있다면…

그 뒤 영류왕은, 당 태종이 돌궐의 가한을 사로잡은 것을 축하하며 고구려 땅을 그린 지도 ‘봉역도’를 바쳤다.

631년, 당나라 사신이
옛 싸움터에 나타났다.

당나라는 장손사를 보내, 수나라 군사들의 뼈를 거두어 묻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장손사당나라 사신
장손사수나라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라.
그리고 저 경관을
허물어라!

경관은 수와 싸우던 때, 이긴 고구려가 적군의 주검을 모아 흙으로 덮어 쌓은 언덕이었다.

여울열 살 남짓 · 상상 인물여울 아버지요동의 농부 · 상상 인물
여울아버지, 저걸
왜 허물어요?
아버지…당은 잊지 않았다는 거다.
수나라가 여기서 진 것을.
전령당나라가 경관을
허물었사옵니다!
영류왕당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서쪽 변경에
긴 성을 쌓으라!

영류왕은 무리를 일으켜 장성을 쌓게 했다.

요하압록강대동강고구려당(당나라)발해서해부여성신성요동성안시성비사성평양성천리장성 (추정)성벽이 지난 길과 끝자리는여러 설이 있다 (선은 대략)

동북쪽 부여성에서 바다에 이르는 천여 리. 다 쌓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삼국유사』는 이때 ‘남자는 성을 쌓고, 여자는 밭을 갈았다’고 적었다.

여울아버지,
저도 갈래요!
아버지너는 어머니를 도와
밭을 갈아라.
어머니…몸 성히
다녀오세요.

고을마다 많은 사람이 서쪽 변경으로 떠났다.

흙을 지게로 져 나르고, 나무 틀에 부어 달굿대로 한 켜 한 켜 다졌다.

일꾼들어여차—
다져라!

해가 가고 또 갔다. 장성은 조금씩 들판을 따라 길어졌다.

여울아버지! 어머니가
조밥을 싸 주셨어요.
아버지…벌써 내 어깨만큼
컸구나.

640년, 영류왕은 세자 환권을 당나라에 보내고, 귀족 자제들을 당의 국학에 들여보내 배우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듬해, 당나라에서
한 사신이 왔다.

641년, 당나라 사신 진대덕이 고구려에 들어왔다. 그는 이르는 성마다 지키는 관리에게 비단을 듬뿍 안겼다.

진대덕당나라 사신 · 직방낭중
진대덕나는 산과 물을 좋아하오.
경치 좋은 데가 있으면 보고 싶소.
성의 관리예, 예!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관리들은 기꺼이 그를 이끌고,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여울비단 몇 필에
길을 다 보여 주다니…
아버지산수만…
보러 온 걸까?

그렇게 진대덕은 고구려의 길과 성, 산과 강을 구석구석 알아냈다.

수나라 때 싸우러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중국 사람들을 만나면, 진대덕은 고향 친척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진대덕그대 형님은 고향에서
잘 지내고 있소.
늙은 사내…형님이,
살아 계시다고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남녀가 길 양쪽에 늘어서 그를 구경했다.

평양에 이른 진대덕을, 왕은 군사를 성대하게 늘어세우고 맞았다.

영류왕먼 길 오셨소.
진대덕…창이 몇 자루,
깃발이 몇 개라.

그가 나라의 속사정을 엿보러 온 줄을, 고구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진대덕은 돌아가 당 태종에게, 고구려가 고창이 망했다는 소식에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고 아뢰었다.

당 태종요동을 치면, 저들은 온 나라를
기울여 막으러 오겠지.
그 틈에 바닷길로 평양을 치면…
어렵지 않다.

다만 산동(중국 동쪽)의 고을들이 아직 피폐한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으니,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642년 정월, 영류왕은 동부의 대인 연개소문에게 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게 했다.

장성 공사터에
새 감독이 왔다.

그의 아버지는 동부의 대인으로 대대로를 지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대인의 자리를 이었다.

연개소문동부의 대인 · 장성 공사의 감독
연개소문이 성은 고구려의 등뼈다!
서둘러라!

일꾼들 사이에는 새 감독을 두고 이런 말이 돌았다.

물속에서 태어난
사람이래…
그래서 성이 ‘연(淵)’이래.
깊은 못 말이야.

『삼국사기』는 그가 스스로 물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홀렸다고 적었다.

그보다 앞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귀족들은 그의 성질이 잔인하고 포악하다며 자리를 잇지 못하게 했다.

연개소문그 자리를 맡게만
해 주십시오.
잘못하면 쫓아내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딱하게 여겨, 허락했다.

연개소문두려우냐?
여울…예.
그럼 서둘러라.
성이 늦으면, 당이 온다.

『삼국사기』는 그가 몸에 칼 다섯 자루를 차서, 곁의 사람들이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삼국사기』는 그가 자리를 이은 뒤 흉포하게 굴자, 대인들과 왕이 몰래 그를 없애기로 의논했다고 적었다.

대인개소문을 그대로 두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영류왕…아무도
모르게 하시오.

그러나 이 일은 새어 나갔다.

642년 10월, 연개소문은 군사를 사열하는 것처럼 꾸며 자기 부의 군사를 모두 모았다.

연개소문어서 오시오.
오늘 우리 군사를 보여 드리리다.

그리고 평양성 남쪽에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 대신들을 불러 함께 보게 했다.

대신들이 다 모이자, 연개소문의 군사들이 그들을 모두 죽였다. 백 명이 넘었다.

그 길로 그는 궁궐로 말을 달려 들어갔다.

영류왕은
그날 목숨을 잃었다.

영류왕이제 백성을 쉬게 하리라.

영류왕이 왕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째였다.

소식은 바람처럼, 서쪽 장성 공사터까지 퍼졌다.

전령도성에서
큰일이 났다!
여울임금님이…
돌아가셨대요.
아버지쉿!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아우 대양왕의 아들 장을 왕으로 세웠다. 보장왕이다.

보장왕영류왕의 조카 · 고구려의 새 왕
보장왕…그리하시오.
연개소문나라의 일은,
이 막리지가 맡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당나라의 병부상서와 중서령을 합친 것 같은 벼슬이었다.

이제 그는 멀고 가까운 곳에 명령을 내리며, 나랏일을 제 마음대로 했다.

길잡이 군사막리지께서 나가신다—
물렀거라!

『삼국사기』는 그가 말을 오르내릴 때면 귀족이나 장수를 땅에 엎드리게 해 그 등을 밟았다고 적었다.

643년 3월, 연개소문이 보장왕에게 아뢰었다.

세 가르침은 솥의 세 발과 같아,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三敎譬如鼎足 闕一不可 — 『삼국사기』 보장왕 2년

연개소문유교와 불교는 성한데 도교는 아직 약하니,
당에 사신을 보내 도교를 구하소서.
보장왕옳은 말이오.

당 태종은 도사 숙달 등 여덟 명과 노자의 『도덕경』을 보내왔다. 왕은 기뻐하며 절을 내주어 그들을 머물게 했다.

보덕반룡사의 스님
보덕도교를 높이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보장왕어서 오시오!

『삼국유사』는 반룡사의 스님 보덕이 여러 번 말렸지만, 왕이 듣지 않았다고 전한다.

앞서 642년 11월, 당 태종은 영류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 동산에서 애도했다.

장손무기당 태종의 신하
당 태종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나랏일을
제멋대로 하니, 참을 수 없다.
장손무기잠시 참으소서. 저들이 교만해지기를
기다렸다 치셔도 늦지 않습니다.
…좋다.

태종은 사신을 보내 보장왕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고구려가 교만해지기를.

여울아버지, 이 성이
우리를 지켜 줄까요?
아버지…지켜 주겠지.
우리가 쌓았으니.
연개소문성이 늦으면, 당이 온다.

서쪽 하늘 아래, 성은 아직 다 쌓이지 않았다.

누구는 그를 임금을 죽인 역적이라 했고, 누구는 당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이라 했다.

장성이 다 쌓이기도 전,
645년, 당 태종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온다.

제35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다롄 다헤이산(대흑산) 산성중국 다롄 다헤이산(대흑산)의 산성 · 고구려 비사성으로 보는 곳

    천리장성은 어디에?

    『삼국사기』는 631년 영류왕이 무리를 일으켜 장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동북쪽 부여성에서 바다에 이르는 천여 리였고 16년 만에 끝났다고 적었어요. 『삼국유사』가 옮긴 「고려고기」의 전설은 장성을 쌓자고 아뢴 사람을 개금(연개소문)이라고 했어요. 부여성은 지금의 중국 지린성 눙안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고, 바닷가 끝은 랴오둥반도 끝의 비사성(지금의 다롄)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성벽이 지난 정확한 길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어요. 1971년 중국의 조사에서는 너비 6m 안팎, 높이 2~3m쯤의 흙 성벽 자리가 보고되었는데, 성문이나 망루가 보이지 않아 이미 있던 산성들을 이어 적의 발을 늦추는 성벽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 경관, 당이 허문 언덕

    경관(京觀)은 싸움에서 이긴 쪽이 적군의 주검을 모아 흙으로 덮어 쌓은 큰 언덕으로, 이긴 것을 널리 보이는 표였어요. 『삼국사기』는 631년 당나라가 광주사마 장손사를 보내 수나라 군사들의 뼈를 거두어 묻고 제사를 지낸 뒤, 고구려가 그때 세운 경관을 헐었다고 적었어요. 『구당서』는 그 뒤 영류왕이 나라가 공격받을까 두려워 장성을 쌓았다고 했어요. 다만 『자치통감』은 당 사신이 고구려에 온 때를 631년 8월로 적어, 2월에 시작된 장성 쌓기가 먼저였다고 보는 연구도 있어요. 경관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이 화에서는 풀 덮인 흙 언덕으로 그렸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 『구당서』 고려전
  3. 연개소문의 집안

    성은 연(淵)이에요. 중국 역사책은 당 고조 이연의 이름을 피해 천(泉)으로 적었고, 『일본서기』는 그를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 불렀어요. 『삼국사기』는 아버지가 동부(서부라고도 해요)의 대인으로 대대로를 지냈다고 했고, 맏아들 남생의 묘지명에는 할아버지 자유와 아버지 태조가 모두 막리지를 지냈다고 적혀 있어요. 그가 스스로 물속에서 태어났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집안의 시조가 물에서 났다는 전승이나 성 ‘연(못)’과 이어 보는 견해도 있어요.

    『삼국사기』 열전 개소문 · 천남생 묘지명
  4. 평양성 칠성문 (20세기 초)평양성 칠성문 · 20세기 초 사진(조선 때 고쳐 쌓은 문)

    642년의 정변

    『삼국사기』 본기는 642년 정월 왕이 동부 대인 개소문에게 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게 했고, 10월 개소문이 왕을 죽였다고만 적었어요. 열전은 중국 역사책을 따라, 귀족들과 왕이 그를 없애려 하자 군사를 사열한다며 성 남쪽에 술과 음식을 차리고 대신들을 불러 100여 명을 죽인 뒤 궁에 들어가 왕을 죽였다고 했어요(『일본서기』는 180여 명이라 하고, 때도 조금 다르게 적었어요). 그는 영류왕의 조카 장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어요. 다만 같은 『삼국사기』의 김유신 열전은 이해의 그를 ‘태대대로’라고 불렀어요. 당과 잘 지내려던 영류왕과 당에 강하게 맞서려던 연개소문이 부딪쳤다고 보는 견해가 많고, 당 태종은 뒷날 이 일을 645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 『삼국사기』 열전 개소문 · 『일본서기』
  5. 역적인가, 영웅인가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송나라 왕안석이 ‘개소문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들면서도, ‘그도 재주 있는 인물이었지만 바른 도리로 나라를 받들지 않고, 잔인하고 포악하게 제멋대로 하다 큰 반역에 이르렀다’고 평했어요. 일제 강점기에 신채호는 그를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높였어요. 오늘날에는 당의 침략을 막아 낸 지도력과 함께, 정변과 강경 일변도의 대외 정책이 뒷날 고구려를 어렵게 했다는 점도 함께 따져 봐요.

    『삼국사기』 열전 개소문 (김부식의 논)
  6. 고구려 무덤 벽화의 현무고구려 무덤 벽화의 현무(거북과 뱀) · 『조선고적도보』(1915)

    도교를 들여오다

    624년 당 고조가 도사를 보내 『노자』를 강의하게 했고, 이듬해 고구려도 사람을 보내 불교와 도교를 배우게 했어요. 643년에는 연개소문이 ‘유교·불교·도교 세 가르침은 솥의 세 발과 같다’며 도교를 청해, 당 태종이 도사 숙달 등 여덟 명과 『도덕경』을 보냈고 왕은 그들을 절에 머물게 했어요. 『삼국유사』는 반룡사의 스님 보덕이 이를 걱정해 여러 번 말리다가 650년(667년이라는 기록도 있어요) 남쪽 완산주(지금의 전주) 고대산으로 옮겨 갔다고 전하는데, 방장(스님이 사는 방)을 신통력으로 날려 옮겼다는 전설이 붙어 있어요. 도교를 들인 까닭은 노자를 조상으로 받드는 당과 사이를 부드럽게 하려 했다거나, 불교와 가까운 귀족 세력을 누르려 했다는 등 여러 견해가 있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 『삼국유사』 보장봉로 보덕이암
  7. 상상으로 그린 장면

    여울과 아버지·어머니는 기록에 없는, 상상으로 그린 사람들이에요. 경관이 허물어지는 모습, 장성을 쌓는 방법과 일꾼들, 진대덕이 장성 곁을 지나는 장면과 그가 만난 늙은 사내, 연개소문이 공사터에 온 장면과 그가 한 말, 일꾼들 사이에 돈 소문, 도사들이 오던 날 보덕이 곁에 있던 모습, 밀의·잔치·이튿날 새벽의 모습, 당 태종과 장손무기가 누각에서 나눈 모습도 기록을 바탕으로 지어냈어요. 진대덕은 실제 인물로, 고구려에서 보고 들은 것을 『봉사고려기』로 남긴 것으로 보는데, 이 책은 일부만 『한원』 등에 인용되어 전해요.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제36화 · 안시성의 가을

645년, 당 태종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넌다. 요동성과 백암성이 잇달아 무너지고 — 이름이 전하지 않는 성주가 지키는 안시성 앞에, 거대한 흙산이 솟아오른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