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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강가에 뿌리내리다
제2화

강가에 뿌리내리다

신석기 시대 · 약 1만 년 전(기원전 8000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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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아주 먼 옛날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짐승을 쫓고 열매를 따며 철 따라 옮겨 다녔다. 추위와 어둠 속에서 그들을 지켜 준 것은 불이었다. 그러다 길고 긴 빙하기가 끝나자, 얼음이 녹아 바닷물이 차오르고 땅은 따뜻해졌다.

등장인물

다래이 이야기의 주인공.
바다를 꿈꾼다
할머니무리를 이끄는
어른
엄마그릇 빚는
솜씨꾼
아버지통나무배로
고기를 잡는다
버들다래의
단짝 친구

빙하기가 끝나자 한반도에는 숲이 우거졌다.

참나무에는 도토리가 여물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와 조개가 넘쳐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흙을 불에 굽기 시작했다.

제주 서쪽 바닷가. 사람들은 아직 철 따라 옮겨 다녔지만, 불 속에서 그릇을 꺼낼 줄 알았다.

여인흙이 돌처럼 단단해졌어!
아이봐, 안 깨졌어!

이제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질긴 풀뿌리도 조개도, 한 그릇 국이 되었다.

아이와, 조개가 입을 벌렸어!

그로부터 수천 년 뒤.

한강 가에 한 무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래도록 철 따라 떠돌던 무리가, 물이 가깝고 물고기가 많은 강가에 닿았다.

엄마아버지
다래할머니, 또 떠나요?
할머니아니. 이제 여기 뿌리내리고 살자!

사람들은 땅을 우묵하게 파고 기둥을 세운 뒤, 갈대와 풀로 지붕을 덮었다.

아버지땅을 깊이 파야 겨울에 따뜻하단다.
다래그럼
여름엔요?

땅속에 반쯤 들어앉은 움집은, 겨울엔 덜 춥고 여름엔 덜 더웠다.

다래우리 집이다!
할머니이제 비바람 걱정은 없겠구나.

집 한가운데 화덕에는 늘 불이 타올랐다.

진흙을 가늘고 길게 빚어 한 단씩 쌓아 올리면, 그릇이 되었다.

다래엄마, 왜 빗금을 그어요?
엄마글쎄다…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이렇게 그려 왔단다.

볕에 잘 말린 그릇을 장작불 속에 넣고 구웠다.

다래내 그릇, 깨지면 어떡해요?
다래봐, 안 깨졌어!
엄마우리 다래, 솜씨가 제법이구나!

가을이면 온 마을이 참나무 숲으로 갔다. 도토리는 긴 겨울을 버틸 양식이었다.

버들다래의 단짝 친구
버들내가 더 많이 주웠다!
다래흥, 내 건 더 굵거든!
다래으, 떫어!
엄마그러니까 물에 며칠 우려야지. 떫은 물이 다 빠져야 먹을 수 있단다.
다래바닥이 뾰족하니까 모래에 꽂아 두면 안 넘어져!

넉넉히 거둔 도토리는 그릇과 땅에 판 구덩이에 담아 두고, 겨우내 꺼내 먹었다.

겨울밤이면 엄마는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할머니는 뼈바늘로 그물을 기웠다.

다래할머니, 그 하얀 팔찌는 뭐예요?
할머니바다에서 온 거란다.
할머니어릴 적에, 강을 거슬러 온 바다 사람한테 받았지.
다래바다는 어떻게 생겼어요?
끝도 없이 넓은 물이라더구나. 짜고, 출렁이고…
할머니할미도 한번 보고 싶구나, 바다…

그날 밤, 다래는 바다 꿈을 꾸었다.

다래가 꿈꾸던 바다.

그 바닷가에도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조개를 먹고 남은 껍데기를 한곳에 버렸다.

쌓이고 쌓인 껍데기는 조개더미가 되었다.

바닷가 아이어흥! 나는 바다 귀신이다!
친구하하, 그게 뭐야!

가끔은 바다 건너 큰 섬에서도 손님이 왔다.

아이저 돌 좀 봐! 까맣게 반짝여!
바다 건너 온 손님이 검은 돌, 조개 팔찌랑 바꿉시다.

동쪽 바닷가 사람들은 더 큰 것을 쫓았다. 통나무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잡았다.

작살잡이고래다! 바짝 붙어라!
뱃사람지금이다, 던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바위에 새겼다.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도록.

다시, 한강 가 다래의 마을.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다래할머니, 봄 되면 같이 바다 보러 가요.
할머니다래야… 바다는, 네가 대신 보려무나.

할머니는 끝내 봄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아끼던 조개 팔찌와, 도토리를 가득 담은 그릇을 곁에 묻었다.

다래할머니, 바다까지 훨훨 가세요.

저세상에서도 배고프지 않도록.

할머니끝도 없이 넓은 물이라더구나.

사람들은 해와 달에도, 강과 큰 바위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하늘과 사람을 이어 준다는 무당이, 올해도 곡식이 잘 여물기를 빌었다.

다래할머니도 저 달에서 보고 계실까?

봄이면 돌괭이로 땅을 일구고, 조와 피 같은 곡식의 씨앗을 뿌렸다.

다래이 작은 씨앗이
정말 곡식이 돼요?
엄마그럼. 도토리만 믿다간 흉년에 굶는단다.

아버지는 커다란 소나무 통나무 속을 불로 그을리고, 날을 갈아 세운 돌자귀로 긁어냈다.

다래이 배 타고 바다까지 갈 수 있어요?
아버지그럼! 다 만들면 같이 가 보자.

새 배가 생기자, 아버지와 삼촌은 새벽마다 강에 그물을 던졌다.

아버지걸렸다! 그물이 묵직해!
다래와, 많다!

여름이 가자, 조 이삭이 누렇게 고개를 숙였다.

다래할머니, 보세요! 씨앗이 이만큼 자랐어요!

거둔 곡식은 갈판에 올려놓고 갈돌로 곱게 갈았다.

마을 사람들은 핏줄로 이어진 한 식구였다. 거둔 것은 모두 함께 나누었다.

마을 어른올해 거둔 것은 집집마다 똑같이 나누자.
다래올겨울엔 배곯을 일 없겠다!

마을 어른은 일을 이끌었지만, 누구를 부리지는 않았다.

아직은, 누가 누구를
다스리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아버지는 새 배에 다래를 태우고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다래정말 바다까지 가요?
아버지그럼. 강물은 다 바다로 가거든.
다래할머니, 바다예요!
할머니끝도 없이 넓은 물이라더구나.

할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바다였다.

다래도 자라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다래의 손녀의, 손녀의, 손녀…

강물은 그렇게
수천 년을 흘렀다.

소녀다래의 먼 후손
소녀엄마, 왜 빗금을 그어요?
소녀의 엄마글쎄다…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이렇게 그려 왔단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북쪽에서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소녀저게… 뭐지?

앞장선 사내가 치켜든 무언가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해처럼 빛나는 것.

청동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흙을 굽고, 씨앗을 뿌리고, 바다를 꿈꾸던 강가의 사람들.

빛나는 칼이 나타난 그날부터,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2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가장 오래된 토기, 제주 고산리

    1987년 5월, 제주 고산리에서 흙을 퍼 가려고 땅을 파던 주민이 돌로 만든 창과 긁개를 발견했어요. 발굴해 보니 1만 2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무렵 사람들이 머물던 자리였고, 흙에 풀을 섞어 빚어 구울 때 풀이 탄 자국이 남은 고산리식 토기가 나왔어요. 이 발견으로 한국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때가 2천 년 넘게 앞당겨졌어요. 그 뒤 토기는 진흙 띠를 덧붙인 덧무늬 토기, 빗살처럼 무늬를 그은 빗살무늬 토기로 이어졌어요.

  2. 부산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토기부산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토기 · 국립중앙박물관

    홍수가 찾아 준 마을, 암사동

    1925년 여름 을축년 대홍수 때, 깎여 나간 서울 암사동 강가 모래언덕에서 빗살무늬 토기 조각이 쏟아져 나왔어요. 빗살무늬 토기는 바닥이 뾰족하거나 둥근 것이 많아 모래땅에 꽂거나 괴어 두고 쓰기 알맞았을 텐데, 무늬를 왜 그었는지는 아직 몰라요. 암사동 유적에서는 움집터와 불에 탄 도토리, 그물추, 갈돌과 갈판, 옥 장신구도 나왔어요. 지금 그곳에는 움집을 되살린 선사 유적지와 전시관이 있어요.

  3.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다

    황해도 봉산 지탑리의 신석기 집터에서는 불에 탄 좁쌀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는 이랑과 고랑이 남은 기원전 3600~3000년 무렵의 밭이 나왔어요. 문암리 밭은 2012년 발표 당시 동아시아에서 처음 확인된 신석기 시대 밭이었어요. 그래도 농사는 먹을거리의 한 부분이어서 물고기잡이와 사냥, 열매 따기도 이어졌고, 양양 오산리에서는 돌 몸체에 뼈 바늘을 묶은 결합식 낚싯바늘도 나왔어요. 돌괭이·간돌도끼처럼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썼기 때문에, 이 시대를 ‘새로운 돌의 시대’ 신석기 시대라고 불러요.

  4. 8천 년 전의 통나무배

    2004년 말, 경남 창녕 비봉리에서 물을 빼내는 시설을 짓던 공사장에 신석기 유적이 드러났어요. 이듬해 땅속 깊은 곳에서, 소나무 통나무 속을 불로 그을린 뒤 돌 도구로 긁어낸 배 한 척이 나왔어요. 남은 길이만 3미터가 넘고 원래는 4미터가 넘었을 것으로 보며, 나이는 약 8천 년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오래된 배예요.

  5. 부산 동삼동 패총(조개더미) 유적부산 동삼동 패총(조개더미) 유적

    바다를 건너온 검은 돌

    부산 영도의 동삼동 조개더미에는 수천 년 동안 쌓인 조개껍데기 층 속에 남해안 신석기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남아 있어요. 조개껍데기의 석회 성분 덕분에 짐승 뼈와 뼈 도구가 썩지 않았고, 눈과 입 구멍을 뚫은 조개껍데기 가면도 나왔어요. 일본 규슈의 화산에서 캐낸 것으로 보이는 흑요석과 규슈 사람들이 쓰던 토기도 함께 나와, 통나무배로 바다를 건너 물건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 팔찌는 1,500여 점이나 나왔는데, 다른 곳과 바꾸던 물건이었을 것으로 짐작해요.

  6.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높이 약 5m, 너비 약 8m)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고래를 새긴 바위, 반구대

    울산 반구천 기슭의 반구대 암각화에는 높이 5미터 가까운 바위 절벽에 물을 뿜는 고래, 새끼를 업은 고래, 작살에 꽂힌 고래와 배를 탄 사람들, 사슴·호랑이·멧돼지가 새겨져 있어요. 언제 새겼는지는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의견이 갈려요. 다만 2010년 울산 황성동의 신석기 유적에서 사슴뿔 작살촉이 박힌 고래 꼬리뼈와 어깨뼈가 나와, 신석기 사람들이 실제로 고래를 잡았음을 보여 줘요. 2025년 7월에는 가까운 천전리 암각화와 묶인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어요. 해마다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되풀이해 온 탓에, 지금은 보존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요.

  7. 떠난 이에게 건넨 선물

    남해의 작은 섬 통영 연대도의 조개더미에서는 기원전 5000년 무렵의 무덤들이 나왔어요. 한 사람은 돌고래·수달·너구리 이빨을 꿰어 만든 발찌를 차고 있었고, 무덤 곳곳에서 토기와 조개 팔찌, 낚싯바늘이 함께 나왔어요. 떠나는 이가 아끼던 것을 곁에 넣어 준 거예요. 신석기 사람들은 해와 달, 산과 강, 큰 바위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먼저 떠난 조상의 영혼을 모셨던 것으로 보여요.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제3화 · 고인돌을 세운 사람들

청동을 가진 자가 힘을 가졌다. 곡식이 쌓이자 빈부의 차이와 싸움이 생기고, 마침내 거대한 돌무덤을 세울 만큼 힘센 지배자가 나타난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