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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흰 피의 기적
제29화

흰 피의 기적

법흥왕과 이차돈 · 527년 또는 5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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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지난 화에서는 신라의 지증왕을 만났다. 예순넷에 왕위에 오른 그는 순장을 금하고 소갈이를 권했으며, 503년 나라 이름을 ‘신라’,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정했다. 512년에는 장수 이사부가 나무 사자의 꾀로 동해의 우산국을 항복받았다. 514년, 지증왕의 뒤를 맏아들 원종이 이었다.

등장인물

법흥왕신라의 왕. 지증왕의 맏아들,
이름은 원종
이차돈왕을 가까이 모시는 젊은 신하(사인).
『삼국유사』에선 스물두 살
공목절 짓기를 반대한 귀족.
『삼국유사』가 향전에서 옮긴 이름
묵호자고구려에서 왔다는 승려.
옛이야기 속 인물
김구해금관국(김해의 가야)의
마지막 왕

514년, 지증왕이 세상을 떠나고 맏아들 원종이 왕위에 올랐다.

법흥왕지증왕의 맏아들 · 이름은 원종

『삼국사기』는 새 왕이 키가 일곱 자이고, 너그러워 사람을 아꼈다고 적었다.

520년 정월, 왕은 나라의 법인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들이 입을 옷(공복)을 처음 정했다.

법흥왕이제부터 이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벼슬 높은 순서대로 자줏빛·붉은빛·푸른빛·누런빛 옷을 입었다.

524년, 동해 바닷가 마을 거벌모라에 비석 하나가 섰다.

관리법을 어긴 자는
장 60대, 장 100대에 처한다!

비석에는 왕 ‘모즉지 매금왕’과 함께 일을 정한 귀족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졌다. 왕은 아직 귀족들과 함께 나랏일을 정했다.

이차돈왕을 가까이 모시는 젊은 신하
법흥왕이 향의 이름을 아느냐?
이차돈…모르옵니다.

백 년쯤 전에는, 이 나라의 임금도 신하도 향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가 일선군(지금의 구미 선산)에 이르자, 모례가 집 안에 굴방을 만들어 그를 머물게 했다.

묵호자이것을 사르면,
정성이 신성한 데까지
닿습니다.

묵호자가 향을 사르며 빌자, 왕의 딸이 앓던 깊은 병이 곧 나았다고 한다.

소지왕 때에는 승려 아도가 시자 셋과 함께 모례의 집에 왔다.

마을 사람머리 깎은 저 사람들,
뭘 읽는 거지?

아도는 몇 해 뒤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시자들이 경전을 읽자 믿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났다.

법흥왕과인은 왕이 된 뒤로,
백성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씻을 곳을 세우고 싶었다.
이차돈…절을, 말씀이십니까?

왕이 천경림에 절을 세우겠다고 하자, 신하들이 고개를 저었다.

공목귀족 · 향전에 전하는 이름
공목천경림은 예로부터
신성한 숲이옵니다.
절이라니요!

신하들은 나라 다스리는 큰 도리만 내세우며, 절을 짓자는 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법흥왕과인이 덕이 없어서인가…
누가 나와 함께하랴.

곁을 지키던 이차돈은 왕의 얼굴만 보고도, 그 마음을 알았다.

『삼국유사』는 그 밤, 두 사람이 남몰래 한 약속을 전한다.

이차돈목숨이 걸린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법흥왕…네가 할 일이 아니다.
이차돈제가 왕명을 거짓으로 전했다 하여,
제 목을 베소서.
그러면 온 백성이 따라,
감히 가르침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법흥왕부처는 제 살을 베어
새 한 마리를 살렸다 하였다.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일에,
어찌 죄 없는 너를
죽이겠느냐!
이차돈버리기 어려운 것 가운데
목숨만 한 것은 없지요.
하지만 소신이
저녁에 죽어
큰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진다면—
법흥왕봉황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 높이 날 뜻을 품는다더니…
네가 바로 그러하구나.

『삼국사기』에는 남몰래 한 약속 이야기가 없고, 이차돈이 ‘저를 베어 뭇사람의 의논을 정하소서’라고 아뢰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삼국유사』는 527년,
『삼국사기』는 528년의 일로 적었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전에 따르면, 이차돈은 ‘왕의 명’이라며 절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차돈왕명이다!
이 숲에 절을 짓는다!
공목천경림에 도끼를 대다니!
신하어서 대궐로!

왕은 위엄을 갖추고 칼과 창을 든 군사를 사방에 세운 뒤, 신하들을 불렀다.

법흥왕경들은 어찌하여,
과인이 절 짓는 것을 막는가?

『삼국사기』는 신하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아뢰었다고 전한다.

알공공목과 함께 반대한 귀족
공목저 중들은 머리를 깎고
옷차림이 괴이하며,
하는 말도 괴상하옵니다!
알공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그 명은 받들 수
없사옵니다!
이차돈신하들의 말이 틀렸습니다!
비상한 사람이 있은 뒤에야,
비상한 일이 있는 법입니다.
법흥왕뭇사람의 말은 굳건한데,
너 홀로 다른 말을 하는구나.
둘 다 따를 수는 없다.
…끌어내라!

왕은 마침내 그를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했다.

관리들이 그를 묶어 관아로 끌고 갔다.

이차돈나는 법을 위해 죽는다!
부처님께 신령함이 있다면,
내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으리라!

왕은 끝내 그를 붙잡지 않았다.

흰 젖빛 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

목을 베자, 잘린 자리에서 젖처럼 흰 피가 한 길이나 솟구쳤다고 한다.

피가… 젖처럼 희다!

『삼국유사』는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리며, 꽃비가 흩날렸다고 전한다.

샘물이 마르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며,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졌다고도 한다.

향전에는, 그의 머리가 날아가 북쪽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삼국유사』는 왕이 슬피 울어, 눈물이 옷자락을 적셨다고 전한다.

이차돈소신이 저녁에 죽어…

『삼국사기』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끝맺는다.

사람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

衆怪之 不復非毁佛事 — 『삼국사기』

사람들은 그를 북산의 서쪽 고개, 금강산에 묻었다.

뒤따르는 사람어버이를 잃은 것만 같구나…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좋은 터를 골라, 자추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532년, 금관국의 왕 김구해가 왕비, 세 아들과 함께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

김구해금관국의 마지막 왕
법흥왕예를 다해 맞으라.
옛 나라 땅을 그대의 식읍으로 주겠소.

왕은 그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막내아들 무력은 뒷날 각간에 올랐고, 그 손자가 김유신이다.

535년, 천경림의 나무를 크게 베어 절을 짓기 시작했다. 들보와 기둥은 모두 그 숲에서 나왔다.

이차돈왕명이다! 이 숲에 절을 짓는다!

536년, 신라는 처음으로 스스로 해를 세는 이름(연호)을 썼다. ‘건원’이다.

540년 가을 7월, 법흥왕이 세상을 떠났다.

나라에서는 ‘법을 일으켰다’는 뜻의 이름,
‘법흥(法興)’을 올렸다.

천경림의 절, 흥륜사는 네 해 뒤인 544년에 다 지어졌다.

약 290년 뒤인 817년,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고치고 큰 비를 세웠다.

이차돈…큰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진다면.

매달 닷샛날이면, 흥륜사의 스님과 사람들이 그 무덤에 모여 그의 넋을 기렸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두 사람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이 임금이 없었다면 이 신하도 없었고,
이 신하가 없었다면 이 일도 없었다.

無是君無是臣 無是臣無是功 — 『삼국유사』

왕위는 법흥왕의 조카이자 외손자인 삼맥종이 이었다. 진흥왕이다.

제29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삼국유사』『삼국유사』

    두 기록, 한 해 차이

    『삼국사기』는 법흥왕 15년(528) ‘처음으로 불법을 행했다’는 대목에 이차돈 이야기를 실었어요. 김대문의 『계림잡전』을 따랐다고 밝히면서, 김용행이 지은 「아도화상비」의 기록과는 크게 다르다고 덧붙였지요. 『삼국유사』는 같은 일을 법흥왕 14년, 정미년(527)의 일로 적고, 9세기 초 남간사 승려 일념이 쓴 글을 바탕으로 왕과 이차돈의 남모르는 약속을 전해요. 이차돈이 ‘왕명이라며 절 지을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가 옮겨 실은 향전(옛 우리 기록)에 나와요. 이 화의 밤의 약속과 천경림 일은 『삼국유사』를, 궁궐에서 오간 말과 마지막 말은 『삼국사기』를 따랐어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 『삼국유사』 흥법 「원종흥법 염촉멸신」
  2. 이차돈은 누구일까

    『삼국유사』에 따르면 성은 박, 이름은 염촉(厭髑)이에요. ‘이차’·‘이처’는 우리말 이름을 소리로 적은 것이고, 그 뜻을 옮기면 ‘싫을 염(厭)’이 된다고 풀이했어요. 할아버지 아진종이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라, 같은 습보갈문왕의 손자인 법흥왕과는 5촌 사이가 돼요. 스물두 살에 왕을 곁에서 모시는 사인(舍人)이었다고 하는데, 김용행의 「아도화상비」는 스물여섯 살이었다고 하고 집안도 다르게 적었어요. 뒤에 흥륜사 금당에는 신라의 열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상이 모셔졌대요.

    『삼국유사』 흥법 「원종흥법 염촉멸신」
  3. 이차돈 순교비(백률사 석당)이차돈 순교비(백률사 석당) · 국립경주박물관

    흰 피와 꽃비 — 이차돈 순교비

    목을 베자 젖처럼 흰 피가 솟았다는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있어요. 하늘이 어두워지고 꽃비가 내렸다는 것, 머리가 날아가 북쪽 금강산(지금의 경주 소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전설이에요. 소금강산의 백률사 터에 있던 이차돈 순교비(백률사 석당)는 높이 1m 남짓한 여섯 모 돌기둥으로, 한 면에 꽃비 속에 젖빛 피가 솟는 순교 장면을, 나머지 다섯 면에 글을 새겼어요. 『삼국유사』의 817년 기록과 맞추어 그 무렵 세운 것으로 보며, 1914년에 옮겨 와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어요.

    이차돈 순교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삼국유사』
  4. 율령과 공복, 그리고 연호

    법흥왕은 517년 군사를 맡는 병부를 처음 두고, 520년 율령을 반포하며 관리들의 공복을 정했어요. 『삼국사기』 색복조에 따르면 높은 벼슬부터 자줏빛(자의)·붉은빛(비의)·푸른빛(청의)·누런빛(황의) 옷을 입었어요. 531년에는 나랏일을 두루 맡는 상대등을 처음 두었는데, 『삼국사기』는 ‘지금의 재상과 같다’고 했어요. 536년에는 ‘건원’이라는 연호를 처음 썼어요. 중국 왕조의 연호를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를 세겠다는 자신감의 표시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 『삼국사기』 잡지 색복
  5. 울진 봉평리 신라비울진 봉평리 신라비 (국보) · 524년

    울진 봉평리 신라비

    1988년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리에서 발견된 비석이에요(국보). ‘갑진년(524) 정월 15일’로 시작하는 약 400자에, 법흥왕을 ‘모즉지 매금왕’이라 부르며 그와 귀족 열세 사람이 거벌모라 등에서 일어난 일을 처리하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장 60대·장 100대의 벌을 내린 일을 적었어요. 520년에 반포한 율령이 실제로 쓰였음을 보여 주고, 왕이 아직 여러 부의 귀족들과 함께 나랏일을 정하던 모습도 엿볼 수 있어요. 높이 2m 남짓으로, 지금은 봉평리의 전시관에 있어요.

    울진 봉평리 신라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산청 전 구형왕릉산청 전(傳) 구형왕릉 · 구형왕의 무덤이라 전하는 돌무덤

    금관국의 항복

    『삼국사기』에 따르면 532년 금관국(지금의 김해에 있던 가야)의 왕 김구해가 왕비, 세 아들 노종·무덕·무력과 함께 나라의 창고와 보물을 가지고 항복했어요. 법흥왕은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상등 벼슬을 주며 그 나라 땅을 식읍으로 삼게 했어요.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이 왕을 ‘구형왕’이라 불렀고,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구충(구차휴라고도 해요)’이라 적었어요. 막내 무력은 진흥왕 때 한강 유역의 신주를 맡은 장수가 되었고, 그 손자가 김유신이에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 『삼국유사』 「가락국기」
  7.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 · 국립경주박물관

    흥륜사, 그리고 이 화의 상상

    『삼국유사』는 527년 천경림에 절을 열기 시작해 535년 숲의 나무를 크게 베어 공사를 일으켰고, 544년(진흥왕 5년)에 흥륜사가 완성되었다고 적었어요. 천경림을 옛 신앙의 성스러운 숲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오늘날 경주 사정동의 흥륜사 터에서는 ‘영묘사’라 새긴 기와가 나와, 진짜 흥륜사 터는 따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아요. 사진의 7세기 신라 기와 ‘얼굴무늬 수막새’도 일제강점기에 이 일대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요. 이 화의 대사는 두 기록의 뜻을 풀어 쓴 것이에요. 『삼국사기』에서 신하들이 함께 한 말은 공목과 알공의 입으로 나누어 옮겼고, 향 이야기를 나누는 밤, 이차돈의 흰 옷, 봉평리 비석 앞의 모습, 장례 행렬, 왕이 금관을 벗어 둔 모습은 상상으로 그렸어요.

    『삼국유사』 흥법 「원종흥법 염촉멸신」 ·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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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 한강을 차지한 왕

일곱 살에 왕위에 오른 진흥왕은 자라서 백제와 손잡고 한강으로 나아간다. 함께 싸운 동맹, 그리고 등을 돌린 배신 — 산꼭대기마다 세운 비석들이 그 길을 기억한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