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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무령왕릉의 문이 열리다
제25화

무령왕릉의 문이 열리다

백제 무령왕 · 501년, 그리고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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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의 군사 3만이 백제의 도읍 한성을 에워쌌다. 바둑 두는 스님 도림의 꾀에 넘어가 큰 공사로 나라 살림을 바닥낸 개로왕은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보내 구원을 청하게 했지만, 성은 무너지고 왕은 목숨을 잃었다. 신라 군사 1만을 얻어 돌아온 문주는 왕위에 올라, 그해 10월 남쪽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등장인물

무령왕백제의 왕
이름은 사마
왕비무령왕의 왕비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명농무령왕의 아들
뒷날의 성왕
백가백제의 좌평
동성왕을 해친 신하
윤재1971년 발굴단의
조사원 · 상상 인물
용수1971년의 인부
상상 인물

1971년 여름 장마철, 충청남도 공주 송산리.

용수물길을 파는 젊은 인부
일꾼용수야, 비 더 오기 전에 끝내자!

옛 백제 무덤인 6호분 안으로 빗물이 스며들자, 무덤 뒤 언덕에 물길을 내는 공사가 벌어졌다.

용수어…? 뭐가 걸렸는데?

진흙 속에서, 벽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아치가 드러났다.

용수벽돌이에요!
꽃무늬가 찍혔어요!
일꾼이건… 무덤 입구 아냐?

공사는 멈췄고, 발굴단이 급히 꾸려졌다. 입구를 드러내던 날 밤, 장대비가 쏟아졌다.

용수저 안에… 누가 잠들어 있을까요?
윤재삼국 시대 왕릉 가운데,
무덤 안에서 주인 이름이
나온 곳은 아직 한 군데도 없어.

1971년 7월 8일 오후. 사람들은 막힌 입구 앞에 막걸리와 수박, 북어를 차려 놓고 먼저 제사를 올렸다.

용수문을 열기 전에 제사부터요?
윤재오래 잠드신 분을 깨우는 거니까.
용수여, 연기다!
윤재김이야… 오래 갇혀 있던 찬 공기야.

막아 둔 벽돌 두 장을 들어내자, 틈새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손전등 불빛 끝에, 머리에 쇠뿔이 달린 돌짐승 하나가 무덤길 한가운데를 지키고 서 있었다.

용수뭐, 뭐가 있어요!
윤재돌짐승이야… 무덤을 지키는.

흙먼지를 털어 내자, 돌에 새긴 글자가 드러났다.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安厝登冠大墓立志如左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
윤재돌판이다… 글자가 새겨져 있어.

돌판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야기는 1,470년 전,
바로 이 땅에서 시작된다.

475년 한성을 잃은 백제는, 남쪽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서해동해한강금강475년 9월 · 고구려 3만한성옛 도읍 · 475년에 잃음475년 10월, 남쪽으로웅진새 도읍 · 지금의 충남 공주가림성(추정)나라의 경계는 대략이며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된 송산리 언덕도, 바로 이 웅진에 있다.

501년 11월, 사냥을 나갔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에 묵던 동성왕이 자객의 칼에 맞았다.

자객을 보낸 이는 신하 백가였다. 왕은 12월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501년 12월, 사마가 왕위에 올랐다. 뒷날 ‘무령왕’이라 불리는 왕이다.

무령왕(사마)백제의 새 왕
무령왕더는 칼로 왕을 바꾸는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

『삼국사기』는 그가 키가 여덟 자에 눈매가 그림 같고, 어질고 너그러워 백성이 따랐다고 적었다.

이듬해 정월, 백가가 가림성에 웅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백가좌평 · 동성왕을 해친 신하
백가새 왕이라고? 이 성은 아무도 못 넘는다!

왕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우두성까지 나아가, 한솔 해명에게 가림성을 치게 했다.

해명한솔 · 백제의 장수
무령왕해명! 가림성을 쳐라!

백가는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다.

무령왕왕을 해친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왕은 백가를 처형했다.

506년, 큰 역병이 돌고 봄부터 석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냇물과 못이 말랐다.

무령왕창고를 열어라!
백성부터 살려야 한다.

510년, 왕은 둑을 튼튼히 쌓게 하고, 떠돌며 놀고먹던 사람들을 몰아 농사로 돌아가게 했다.

일꾼올해는 물난리 걱정 덜겠구먼!

왕은 왕위에 오르자 곧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수곡성을 쳤고, 쳐들어온 말갈과 고구려군도 물리쳤다.

512년 9월, 고구려군이 가불성을 빼앗고
원산성을 깨뜨렸다.

왕은 날랜 기병 3천을 이끌고 위천 북쪽으로 나아갔다.

고구려 장수백제 왕이 겨우 3천을 끌고 왔다고? 진을 칠 것도 없다!

고구려군은 왕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얕보아, 진을 치지 않았다.

무령왕지금이다! 들이쳐라!

왕은 뜻밖의 꾀를 내어, 급히 들이쳤다.

고구려군은 크게 무너졌다.

백제 기병이겼다! 고구려군이 달아난다!

521년 11월, 왕은 바다 건너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글을 올렸다.

무령왕양나라 황제께 이렇게 아뢰어라.
‘백제는 여러 번 고구려를 깨뜨렸고,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신의 배는 서해를 건너, 양나라의 도읍 건강(지금의 중국 난징)으로 향했다.

양나라 황제바다 밖에서도 정성을 다하니, 짐이 기쁘도다.
백제 왕을 ‘영동대장군’으로 삼노라!

12월, 양나라 황제(무제)는 무령왕에게 ‘영동대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523년 2월, 예순둘의 왕은 북쪽 한성으로 길을 나섰다.

무령왕마흔여덟 해 전, 여기서 백제가 한 번 무너졌지.
…이제 백제는 다시 일어섰다.

왕은 한수 북쪽 고을 백성을 불러 쌍현성을 쌓게 하고, 3월에 돌아왔다.

523년 5월, 무령왕이 세상을 떠났다.

왕비명농무령왕의 아들 · 새 왕(성왕)

『삼국사기』에는 왕이 몇 살이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 나이는,
땅속에 묻힌 돌판에 새겨졌다.

왕이 무덤에 묻힌 것은, 스물일곱 달 뒤인 525년 8월이었다.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
돌 새기는 장인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 나이 예순둘…

새 왕 성왕(명농)은 연꽃무늬 벽돌로 쌓은 무덤에 아버지를 모셨다.

왕의 관은 바다 건너 왜 땅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짰다.

성왕아버님의 이름으로, 땅의 신께 이 자리를 샀습니다.
편히 쉬소서.

그리고 무덤의 문이 닫혔다.

4년 뒤(529년) 왕비가 곁에 묻힌 다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무덤 위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랐다.

1930년대에 이곳을 조사한 사람들도, 이 언덕을 곁의 6호분 뒤를 받친 뒷산쯤으로 여겼다.

그렇게, 1,400여 년이 흘렀다.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安厝登冠大墓立志如左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
윤재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

돌판의 첫머리에는, 무덤 주인의 칭호와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용수사마왕이요? 그게 누군데요?
윤재무령왕이야. 『삼국사기』에 적힌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거든.
무령왕…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삼국 시대의 왕릉에서 무덤 주인의 이름이 나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식이 퍼지자 기자와 구경꾼이 밤새 몰려들었고, 발굴단은 서둘러 유물을 거두었다.

발굴단원밀지 마세요! 유물이 밟혀요!

4,600여 점의 유물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무덤 밖으로 나왔다.

윤재너무 서둘렀어… 하룻밤에 끝낼 일이 아니었는데.
용수그래도… 이름은 찾았잖아요.

서두른 발굴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무덤 안에서 나온 글로 주인과 묻힌 날까지 밝혀진 삼국 시대 왕릉은, 지금도 이곳 하나뿐이다.

한성을 잃고 흔들리던 나라를
다시 일으킨 왕,

백제 사마왕 — 무령왕.

제25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무령왕릉 지석무령왕 지석 (국보) · 국립공주박물관

    돌판이 말한 이름 — 지석과 매지권

    무덤길 입구에 돌판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어요. 왕의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던 계묘년(523) 5월 7일에 붕어하시고, 을사년(525) 8월 12일 대묘에 예를 갖춰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는 52자가 새겨져 있어요. 다른 돌판에는 526년에 세상을 떠나 529년 2월 이 무덤에 함께 모셔진 왕비의 이야기와, 돈 1만 문으로 땅의 신들에게서 무덤 자리를 샀다는 매지권이 새겨져 있어요. 삼국 시대 능에서 나온 매지권은 이것 하나뿐이고, 돌판과 함께 중국 돈 오수전 한 꾸러미가 놓여 있었어요.

    무령왕릉 지석·매지권 (국보)
  2. 무령왕릉 진묘수무령왕릉 진묘수 (국보) · 국립공주박물관

    무덤을 지킨 돌짐승

    무덤길 한가운데에는 돌로 깎은 짐승 한 마리가 서 있었어요. 머리에 쇠로 만든 뿔이 하나 달렸고, 몸 양옆에는 불꽃 같은 날개가 새겨져 있어요. 무덤을 지키는 짐승이라는 뜻으로 진묘수라고 부르는데, 이런 짐승을 무덤에 두는 풍습은 중국에서 왔어요. 진묘수와 지석, 왕과 왕비의 금제 관꾸미개 등 무령왕릉 유물 12건 17점이 국보이고, 대부분 공주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무령왕릉 출토 유물
  3. 무령왕과 왕비의 나무 관무령왕과 왕비의 나무 관 · 국립공주박물관

    바다를 건너온 나무, 양나라를 닮은 벽돌

    왕과 왕비의 나무 관은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짰어요. 무덤은 연꽃무늬 벽돌을 쌓아 천장을 터널처럼 둥글게 만든 벽돌무덤인데,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덤과 꼭 닮았어요. 중국에서 건너온 도자기와 오수전도 함께 나와, 이 무렵 백제가 바다 건너 양나라·왜와 활발히 오갔음을 보여 줘요.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이 513년과 516년 오경박사를 왜에 보냈다는 기록도 있어요.

    무령왕릉 · 『일본서기』
  4. 「양직공도」의 백제 사신「양직공도」의 백제 사신 · 6세기 그림을 송나라 때 베낀 것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521년 11월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여러 번 고구려를 깨뜨렸고 …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更爲强國)’는 글을 올렸고, 양 무제는 12월 그를 ‘영동대장군’으로 삼았어요. 이 칭호는 지석의 첫머리에도 새겨졌어요. 중국 역사책 『양서』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렸는데, 거기서는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를 왕이 올린 글(표)의 말이 아니라 『양서』를 쓴 역사가의 말로 읽기도 해요. 같은 해 여름과 가을에는 큰물과 메뚜기 떼로 굶주린 백성 900호가 신라로 떠났다는 기록도 함께 있어요.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 『양서』 백제전
  5. 무령왕릉 내부 재현 모형무령왕릉 안을 재현한 모형 · 공주 송산리 고분군 모형 전시관

    1971년, 하룻밤의 발굴

    1971년 7월 5일, 송산리 6호분에 스며드는 물을 막으려고 무덤 뒤에 물길을 파다가 벽돌무덤의 입구가 드러났어요. 1930년대 조사 때 이 자리는 6호분 뒤의 언덕으로만 여겨져 도굴을 피했지요. 7월 8일 입구를 연 발굴단은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하룻밤 사이에 유물 4,600여 점(뒤의 재조사에서 5,200여 점으로 확인)을 거두었는데, 유물이 놓인 자리를 꼼꼼히 기록하지 못한 이 서두른 발굴은 오래도록 한국 고고학의 큰 반성거리로 남았어요. 이 화의 인부 용수와 조사원 윤재, 그들의 대화는 상상으로 지어낸 거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기록원
  6. 가카라시마(加唐島)가카라시마(加唐島) · ‘각라도’로 보는 일본 사가현의 섬

    『일본서기』가 전하는 섬의 아이

    『삼국사기』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에는 개로왕 때 왜로 가던 곤지 일행이 쓰쿠시(지금의 규슈 북부)의 ‘각라도’라는 섬에서 아이를 낳아 ‘섬의 임금’이라 불렀고, 그 아이가 무령왕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이름 ‘사마’도 섬에서 태어나 붙었다는 거예요. 다만 『일본서기』 안에서도 아버지를 개로왕이라 했다가 곤지라고 하는 등 이야기가 엇갈려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요. 한편 지석의 나이로 셈하면 무령왕은 462년 무렵에 태어나 동성왕의 아들이라기에는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곤지의 아들(동성왕의 배다른 형)로 보는 견해도 있어요.

    『일본서기』 ·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 무령왕릉 지석·매지권
  7. 서울 풍납동 토성 — 아파트 사이로 남은 백제의 성벽서울 풍납동 토성 · 한성 백제의 성

    늙은 왕의 한성 나들이

    『삼국사기』는 무령왕이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인 523년 2월 한성에 가서, 한수 북쪽 고을의 열다섯 살 이상 백성을 불러 쌍현성을 쌓게 했다고 적었어요. 475년에 잃은 한성에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를 두고는, 이 무렵 백제가 한강 유역의 일부를 되찾았다고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갈려요. 한성에서 왕이 하는 혼잣말, 장례 때 성왕의 말, 백가를 꾸짖는 말처럼 기록에 없는 대사는 모두 상상이에요.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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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 사비로, 그리고 관산성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538년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 한다. 강 위에 새로 선 도읍, 그리고 관산성의 횃불 — 백제의 운명이 다시 갈린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