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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쓰러진 왕, 다시 세운 나라
제17화

쓰러진 왕, 다시 세운 나라

고국원왕과 소수림왕 · 342년 ~ 3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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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머슴살이와 소금 장사로 떠돌던 왕손 을불은 300년 고구려의 왕이 되어(미천왕) 313년 낙랑군을 몰아냈다. 331년 미천왕이 세상을 떠나 미천의 들에 묻히자, 태자 사유가 왕위를 이었다. 그가 고국원왕이다.

등장인물

고국원왕미천왕의 아들 사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주씨고국원왕의 어머니
모용황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연(전연)의 왕
한수모용황의 신하
구부고국원왕의 아들.
훗날의 소수림왕
순도전진에서 온 승려

342년, 고국원왕은 산 위의 환도성을 고쳐 쌓고 가을 8월에 그리로 옮겨 살았다.

고국원왕고구려의 왕주씨왕의 어머니
고국원왕아버님의 나라,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주씨네 아버지는 소금 짐을 지고
떠돌던 분이셨다.
그 마음을 잊지 마라.

그 무렵 요하 서쪽에서는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나라 연(전연)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342년 겨울 10월, 연왕 모용황은 도읍을 용성으로 옮겼다.

그리고 먼저 고구려를 치기로 했다.

모용황연(전연)의 왕모용한연의 장수
모용한적은 우리 대군이 넓은 북쪽 길로
오리라 여길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정예를 이끌고
험한 남쪽 길로 가십시오!
모용황좋다.
남쪽 길로 가겠다.
요하고구려연(전연)발해서해북도 · 넓고 평평한 길남도 · 험하고 좁은 길연군 1만 5천북도로모용황의 정예 4만남도로고구려 정예 5만왕의 아우 무왕과 약한 군사남도를 지킨다용성환도성두 길의 자리는 대략(추정)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둘. 넓고 평평한 북도와, 험하고 좁은 남도였다.

고국원왕적의 대군은
넓은 북도로 올 것이다.
무야, 정예 5만을 이끌고
북도를 막아라!
무왕의 아우
무명을 받들겠습니다!

왕 자신은 약한 군사를 이끌고 남도를 지켰다.

고구려 파수꾼남쪽이다!
적의 대군이 남쪽으로 온다!

그러나 모용황이 이끄는 정예 4만은 험한 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용한의 선봉이 먼저 들이치고, 모용황의 대군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군은 크게 졌다. 연군은 그 기세로 환도성에 들어갔다.

왕은 홀로 말을 달려 단웅곡으로 몸을 피했다.

연의 장수 모여니가 뒤쫓아, 왕의 어머니 주씨와 왕비를 사로잡았다.

모여니연의 장수왕비
주씨손대지 마라.
내 발로 가겠다.

북도로 간 연군 1만 5천은 고구려군과 싸워 모두 무너졌다. 모용황은 더 쫓지 않고, 사신을 보내 왕을 불렀다.

고국원왕바위 뒤에 숨어
연의 사신고구려 왕은 나와서
연왕께 엎드리시오!

왕은 나가지 않았다.

한수모용황의 신하
한수고구려 땅은
지켜 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떠나면, 숨은 왕과 백성이
다시 모여들 것입니다.

한수가 말을 이었다.

그 아비의 시신을 싣고,
그 어미를 가두어 데려가십시오.

고구려 왕이 제 발로 찾아와 엎드리거든, 그때 돌려주면 됩니다.

모용황은 그 말을 따랐다. 연군은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수레에 실었다.

고국원왕아버님의 나라,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연군은 대대로 모아 온 보물을 거두고,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궁궐을 불사르고, 환도성을 허물고 돌아갔다.

무덤은 텅 비었고, 어머니는 적에게 끌려갔다.

고국원왕아버님…
어머니…

343년 봄, 왕은 아우를 연에 보내 신하를 칭하고, 진귀한 물건을 천여 점이나 바쳤다.

왕의 아우고구려 왕께서 신하로서
예물을 바치옵니다.
모용황좋다.
아비의 시신은 돌려주마.
…어미는 여기 남는다.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은 그렇게 고구려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볼모로 연에 남았다.

고국원왕아버님, 이제야
모셔 왔습니다.

왕의 어머니 주씨는 남의 나라에서 볼모로 해를 넘겼다.

주씨사유야…
밥은 잘 먹느냐.

해가 가고 또 갔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355년 정월, 왕은 아들 구부를 태자로 세웠다.

그해 겨울, 왕은 연에 볼모와 공물을 보내 어머니를 돌려 달라고 청했다.

연의 임금 모용준이
마침내 허락했다.

연의 장수 조감이 왕의 어머니를 고구려까지 모셔 왔다. 열세 해 만이었다.

조감연의 장수구부왕의 아들. 태자
주씨사유야…!
고국원왕어머니…!

그 무렵 남쪽에서는 백제가 크게 일어서고 있었다. 369년 9월, 왕은 군사 2만을 이끌고 백제를 쳤다.

고국원왕나아가라!

그러나 치양에 진을 쳤다가, 백제 태자의 기습을 받아 크게 졌다.

370년, 고구려를 짓밟았던 연이 서쪽의 전진에게 무너졌다.

연의 태부 모용평이 고구려로 달아나 오자, 왕은 그를 붙잡아 전진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백제가 쳐들어왔다.

371년 10월, 백제의 근초고왕과 태자가 정예 군사 3만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고국원왕평양성을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왕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서 싸웠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왕을 맞혔다.

구부아버님!
고국원왕구부야…
나라를…
부탁한다.
아버님의 나라,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그달 23일, 고국원왕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왕을 ‘고국의 들’에 묻었다. 그래서 그를 ‘고국원왕’이라 부른다.

태자 구부가 왕위에 올랐다. 소수림왕이다.

신하원수를 갚으소서!
당장 백제를 쳐야 합니다!
소수림왕칼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무너지지 않을 나라를
세우겠다.

372년 여름,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했다.

순도전진에서 온 승려
순도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져왔습니다.

같은 해, 왕은 태학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게 했다.

스승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학생들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373년, 처음으로 율령을 반포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글로 정해 온 나라에 알린 것이다.

신하이제부터 온 나라가
이 법을 따른다!

374년에는 승려 아도가 왔다. 이듬해 2월, 왕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워 순도와 아도를 머물게 했다.

아도승려

『삼국사기』는 이것을 ‘해동 불법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고국원왕구부야… 나라를… 부탁한다.
소수림왕아버님, 나라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쓰러진 아버지의 나라를, 아들은 믿음과 배움과 법으로 다시 세웠다.

그 뒤로도 백제와의 싸움은 이어졌다. 377년에는 백제군 3만이 다시 평양성으로 쳐들어왔다.

384년 겨울, 소수림왕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어 아우 이련(고국양왕)이 왕위를 이었다.

이련의 아들 담덕이,
훗날의 광개토대왕이다.

다음 이야기는 평양성을 친 백제의 왕, 근초고왕의 이야기다.

제17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안악 3호분 벽화의 철갑 기병안악 3호분 벽화의 철갑 기병 · 4세기

    342년, 두 갈래 길

    『삼국사기』에 따르면 연의 장수 모용한이 ‘적은 대군이 넓은 북도로 오리라 여길 테니, 험한 남도로 정예를 보내 허를 찌르자’고 꾀를 냈어요. 모용황은 몸소 정예 4만을 이끌고 남도로, 1만 5천은 북도로 보냈지요. 고구려는 왕의 아우 무에게 정예 5만을 주어 북도를 막았고, 왕은 약한 군사로 남도를 지키다 크게 졌어요. 북도의 연군은 모두 무너졌지만, 그때는 이미 환도성이 함락되고 왕은 단웅곡으로 피한 뒤였어요. 중국 역사책 『진서』에도 이 싸움이 실려 있어요. 사진은 4세기 중엽의 고구려 무덤 안악 3호분(황해도) 벽화에 그려진 기병으로, 사람도 말도 갑옷을 입었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2년 · 『진서』 모용황 재기
  2. 파헤쳐진 무덤, 서대묘

    연의 신하 한수는 ‘아버지의 시신을 싣고 어머니를 가두어 가면, 고구려 왕이 제 발로 찾아와 엎드릴 것’이라고 했어요. 연군은 그 말대로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대대로 모은 보물과 남녀 5만여 명을 끌고 갔어요. 중국 지안 마선구의 큰 돌무지무덤 서대묘는 한 변이 50m가 넘는데, 한가운데가 위에서부터 깊게 파헤쳐져 묘실이 남아 있지 않아요. ‘기축년’(329년으로 봐요)이라고 새긴 기와도 나와서, 미천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2년 · 집안 서대묘 조사
  3. 안악 3호분 벽화의 귀부인안악 3호분 벽화의 귀부인 · 4세기

    13년 만에 돌아온 어머니

    343년 2월, 왕은 아우를 연에 보내 신하를 칭하고 진귀한 물건을 천여 점이나 바쳤어요. 연은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주었지만 왕의 어머니 주씨는 볼모로 남겨 두었지요. 355년 12월, 왕이 다시 볼모와 공물을 보내 어머니를 청하자 연의 임금 모용준이 허락했고, 전중장군 조감이 주씨를 고구려로 모셔 왔어요. 이때 연은 고국원왕에게 ‘정동대장군 영주자사 낙랑공’이라는 벼슬을 내렸어요. 함께 끌려간 왕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어요. 사진은 같은 무렵의 무덤인 안악 3호분 벽화에 그려진 귀부인이에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3년·25년
  4. 371년 평양성

    고구려본기는 ‘백제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평양성을 치자, 왕이 군사를 내어 막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이달 23일 세상을 떠났다’고 적었어요. 백제본기는 근초고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 3만을 이끌었고, 고구려 왕이 힘껏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해요. 100년쯤 뒤 백제 개로왕은 북위에 보낸 글에서 ‘쇠(고국원왕)의 목을 베었다’고 했는데, 김부식은 이것을 ‘지나친 말’이라고 덧붙였어요. 고국원왕은 334년에 평양성을 더 쌓았다고 하는데, 이 평양성은 지금의 평양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4년·41년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
  5. ‘연가 7년’이 새겨진 금동 불상‘연가 7년’이 새겨진 금동 불상 · 국립중앙박물관

    불교가 들어오다

    372년 6월,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했어요. 374년에는 승려 아도가 왔는데, 『삼국유사』는 아도가 동진에서 왔다고 해요. 375년 2월 왕은 초문사(성문사)를 지어 순도를,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고, 『삼국사기』는 이것을 ‘해동 불법의 시작’이라고 적었어요. 두 절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사진은 ‘연가 7년’(539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고구려의 금동 불상이에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2·4·5년 · 『삼국유사』 흥법편 「순도조려」
  6. 태학과 율령

    372년 소수림왕은 태학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쳤어요. 기록에 남은 우리나라 첫 국립 교육 기관으로, 주로 귀족의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친 것으로 봐요. 373년에는 처음으로 율령을 반포했어요. 율은 죄와 벌을, 령은 나라의 제도를 정한 법인데, 고구려 율령의 조문은 전하지 않아요. 학자들은 이것을 집단마다 달랐던 관습을 하나의 글로 된 법으로 묶어, 왕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 일로 봐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2·3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환도산성(산성자산성)의 무너진 성벽환도산성(산성자산성)의 무너진 성벽 · 중국 지안

    환도성과 국내성, 그리고 상상으로 그린 장면

    342년 봄 고국원왕은 환도성을 고쳐 쌓고 국내성을 쌓았어요. 평지의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안)과 그 북쪽 2.5~3km쯤의 산성 환도성(산성자산성)은 평소에 머무는 성과 적이 오면 들어가 버티는 성으로 짝을 이루었다고 봐요. 두 성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어요. 한편 성벽 위의 모자, 볼모로 지내는 어머니, 평양성에서 아버지 곁을 지킨 구부와 왕의 마지막 말, 소수림왕의 다짐은 기록에 없는, 상상으로 그린 장면이에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1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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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 바다를 건넌 칠지도

평양성에서 고구려의 왕을 쓰러뜨린 백제의 왕, 근초고왕. 노란 깃발을 앞세운 그의 군대는 북쪽으로 땅을 넓혔고, 바다 건너 왜로는 일곱 가지가 뻗은 신비한 칼 한 자루가 건너간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