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왕이 되다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이 우리 역사의 첫 나라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한다. 고조선은 이웃 연나라와 다투기도 했고, 8조법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그리고 준왕 때, 서쪽 연나라 땅에서 위만이라는 사내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강을 건너왔다.
등장인물
이 이야기의 주인공
청동 장인
망명객
바우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손꼽히는 청동 장인이었다.
칼 한 자루에 한 달 정성이 들지.
진나라가 무너지고 한나라가 일어서는 난리 속에, 연·제·조나라 백성 수만 명이 고조선으로 피란해 왔다.
피란민 가운데에는 낯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도 있었다.
청동이 아니야.
녹도 잘 슨다면서요?
쇠돌도 여기저기서 캔단다.
그날 밤, 바우는 보리밥 한 그릇을 들고 그 대장장이를 찾아갔다.
남은 건 이 망치 하나뿐이구나.
가르쳐 주시오.
말이오?
바우는 아버지가 남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그날 처음 보았다.
함께 두드려 봅시다.
기원전 195년, 연나라 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달아났다. 그 난리 속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왔다.
위만과 그 무리 천여 명이 패수를 건너왔다.
상투를 틀었어요!
아니로구나.
위만은 준왕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살게 해 주시옵소서.
조선의 울타리가 되겠나이다.
서쪽 땅 백 리를 맡기노라.
위만의 곁으로는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준왕이 내준 서쪽 땅은 어느새 작은 나라처럼 북적였다.
그 창끝이 누구를 향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백 개를 더 만들어라!
한나라 군사가 와요?
아버지는 대답 없이 망치만 내리쳤다.
얼마 뒤, 위만이 보낸 사자가 왕검성으로 달려왔다.
열 갈래로 쳐들어옵니다!
대왕을 지키겠다 하옵니다.
한참 말이 없던 준왕이 입을 열었다.
…어서 들라 하라.
그날 밤, 위만의 군대가 횃불을 들고 길을 나섰다.
왕검성 쪽으로 가요…
못 본 척해라.
그러나 위만의 군대가 창끝을 돌린 곳은 국경이 아니었다.
궁궐이었다.
내 너를 믿었거늘!
준왕은 맞서 싸웠으나 당해 내지 못했다.
준왕은 곁에 남은 궁인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섰다.
나를 쳤구나.
다시 시작하시옵소서.
준왕은 바다 건너 남쪽 ‘한(韓)’의 땅에 닿아, 스스로 한왕이라 일컬었다고 전한다.
망명객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가 나라를 잃은 왕.
그러나 그 너그러움 덕분에, 쇠를 다루는 기술과 사람들이 고조선에 들어왔다.
믿음은 나라를 크게도,
위태롭게도 만들었다.
위만이 왕위에 올랐다. 조정에는 조선 사람 신하들도 함께 섰다.
우리는 조선이다!
그리고 쇠가, 고조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바우는 왕검성에서 이름난 쇠 장인이 되었다.
창날이 값을 더 쳐준다던데.
한 집이 먹고살아요.
쇠 낫으로 벼를 베니, 반달 돌칼로 이삭을 하나하나 따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모자라겠네!
거두는 곡식이 늘자 사람도 늘었고, 쇠 무기를 든 군대는 더 강해졌다.
강해진 고조선은 이웃한 진번과 임둔을 굴복시켰다. 『사기』는 그 땅이 ‘사방 수천 리’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세월이 흘러 바우도 늙었다. 바우는 어린 손자에게 그 망치를 건넸다. 강을 건너온 대장장이가 아버지에게 준 바로 그 망치였다.
두드리는 사람 마음에 달렸느니라.
위만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가 왕위에 올랐다.
그 무렵 한나라에서는 황제 무제가 사방으로 땅을 넓히고 있었다.
우거왕 때, 고조선은 한나라와 남쪽 나라들 사이의 길목을 굳게 쥐었다.
문을 열어 주시오!
거래는 이 성문 안에서 하시오!
한나라의 바깥 신하였소!
섭하는 끝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조선의 비왕 장이 패수까지 그를 배웅했다.
평안히 가시오.
섭하는 마부를 시켜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강을 건너 달아났다.
그러고는 황제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아뢰었다.
황제 무제는 섭하의 ‘공’을 높이 사, 그에게 요동 동부도위라는 벼슬을 내렸다.
분노한 고조선은 군사를 보내 섭하를 쳐서 죽였다.
그해 왕검성의 대장간마다 밤새 창날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바우의 손자도 할아버지의 망치를 들었다.
한 무제는 죄인들까지 모아 군대를 꾸렸다.
그해 가을, 바다로, 그리고 땅으로.
고조선의 마지막 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